두번 치룬 함 손님
◇ 두 번 치른 함 손님
지금으로부터 이십 오년 전, 천고마비의 계절인 풍성한 가을 어느 날, 우리 집은 누나의 결혼준비에 마을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축복이 가득한 날이지만 돼지에게는 안타깝게도 죽어야만 하는 운명의 날이기도 하지요. 또한 온 마을 사람들이 간만에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여러 음식을 마음껏 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새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정보전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결혼 풍습에 보통 결혼 전날 음식준비가 끝나갈 무렵 ‘함’ 손님들이 들이닥쳐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술판이 거하게 벌어지지요. 저의 집 역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해가지고 어둠이 살짝 내렸을 때 함을 진 일행들이 밀어 닥쳤습니다. “함 사시오.” 라는 괴성이 문 밖에서 울려 펴졌죠. 아직 어둠이 짓게 깔리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서울에 살고 계신 형님도 오지 않았고 사촌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찬 일인데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향토사단에서 군복무 중에 있었기 때문에 머리가 아주 짧았습니다. 덩치는 작았지만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일그러진 인상이 무기였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면상을 찌푸리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거야!’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보시오 형님들 시간 끌 것 없습니다. 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국물도 없습니다 빨리 들어가시죠.” 두어마디 툭 던지고 미리 준비한 봉투를 한꺼번에 찔러주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둑한 봉투에 놀란 듯 함지내비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일행들도 만족했는지 모두다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방심한 틈을 타 함지내비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잡아당겨 집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마당에 모습을 보인 함지내비 일행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잠시 후 진수성찬에 술판이 벌어지고 누나를 동참시킨 가운데 짓궂은 장난을 치고 나서 얼굴이 벌게진 후 떠났습니다. 결혼전야제인 ‘함’과의 싸움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밤은 깊어 갔습니다. 마당에 돌아다니던 닭들도 보금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지 깃털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장만하던 동네 어른들도 물러갔습니다. 안방에서는 내일 할일에 대해 집안 어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밖에서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웅성웅성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뭔 일인가 싶어서 밖을 나가보니 함지내비 일행을 찾고 있는 양복 입은 신사 한분이 마당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을 한참 지나서 도착 하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 오게 되었다면서 일행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이미 다들 가셨는데 어쩌죠.” 당황하는 기색이 영력했습니다.
아직 저녁식사도 못한 것 같았고 시골길을 찾아오느라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관계로 몹시 피곤해 보였습니다.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잔치 집에 가면 먹을 것이 넘쳐날 것인데 밖에서 식사를 했다면 바보나 다름이 없겠지요. 그 분은 그냥 가려고 했지만 말렸습니다. 귀한 손님인데 그냥 보낼 수 없지 않겠습니까. 택시가 도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시골의 상황을 설명하고 안방으로 모셨습니다. 그때의 시골 교통수단은 하루에 네 번 오는 버스가 전부였고 만약에 버스를 놓치거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화하면 오는 ‘콜택시’ 시골이 원조이지요.
이윽고 푸짐한 잔치 상이 들어왔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진수성찬에 그분의 두 눈은 반짝 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몹시 배가 고팠는지 한마디 말도 없이 잘도 먹었습니다. 음식을 드시면서 아버지를 비롯하여 집안 어른들과 이런저런 말이 오고가고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리고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농사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인삼농사에 대하여 몇 마디 주고받는 순간 그분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참고로 저와 매형의 고향은 인삼재배를 많이 하는 충남 금산입니다. 아버지는 매형 친구라면 당연히 인삼농사를 지을 것이라 생각하고 작황, 가격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 보았던 것이었죠. 헌데 이야기는 자꾸만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만 이야기를 하고 그분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수저를 만지작거리면서 자세가 불안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분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매형 이름을 물어 보았습니다. 갑자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리고는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 온 것 이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휴대폰이 있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겠지요. 안절부절 못하는 그분은 수저를 상에 내려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자초지정에 의하면 읍내 버스터미널에 조금 늦게 도착해보니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이미 떠난 뒤라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멀리서 왔는데 그냥가기는 너무나 아까워 고민하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묻고 물어서 함지내비 일행을 태웠던 택시를 만나게 되었고 합니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 버스터미널이었기에 그날 함지내비 일행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무작정 타고 기사가 대려다 준 곳이 저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마저 남은 음식을 드시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너무나 당황했는지 좀처럼 음식을 드시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집안어른들이 있는 안방에 상차림을 했으니 그 자리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드시다 마시고 간다고 나가려는 그분을 잡고 “지금 택시를 불러도 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마저 드시고 가시지오.” 하고 계속 식사할 것을 권했습니다. 마지못해 그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식욕은 어디로 갔는지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여러 번 반복한 끝에 겨우 식사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밖에서 택시가 도착했는지 경음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소리가 나자마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구두를 신고 대문 밖으로 쏜살같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이게 웬걸, 하수구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당황한 나머지 급히 나가다가 대문 밖에 하수구가 있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에는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밤거리는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하수구는 일반 생활하수가 아닌 축산폐수가 흐르는 수렁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이일을 어쩌나! 어데 다친데 없습니까.” 그분은 창피스러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수구에 빠진 그 분은 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헌데 구두 한 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분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저는 집안에 가서 손전등과 지게작대기를 가져왔습니다. 전등을 밝히고 소똥으로 가득 한 하수구를 작대기로 휘휘 저어보았습니다. 구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갈고리를 가져와 바닥을 긁어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이 왔습니다. 구두였습니다. 초조했던 그분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안도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분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에 지독하게 냄새나는 구두를 그냥 신고 가려고 했습니다. “이봐요 그렇게 그냥 신고가면 좁은 택시 안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는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막 가려고 하는 그 분을 이끌고 우물가에 가서 옷과 구두에 묻은 오물을 털어 내고 물로 세척했습니다. 혹시 어두운 시골길에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몰라 택시가 있는 큰길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 분은 택시를 타면서 이제야 마음이 안정되는지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해서 어쩌죠.” 이 말을 남기고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순간 나의 눈가에는 작은 미소가, 입가에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둠은 더욱더 짙어져 초롱초롱한 별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집안 어른들도 막 잠자리를 드려 하는지 조용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짓는 소리는 이방인의 등장을 용납 못하겠다는 듯 앙칼지고 끝이 자지러졌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시골마을은 정막이 흐르면서 밤이 깊어 갔습니다. 그날 하루 그분은 길고 긴 악몽이었지만, 집안 어른들과 동내사람들은 한바탕 해프닝에 크게 웃으면서 “내일 있을 결혼식에 신랑이 두 명 나타나면 어쩌나” 하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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