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엄마의 얼굴(2010. 7. 14. 행복한 아침 사연방송)
◊ 작아진 엄마의 얼굴
“자식들 고생을 안 시키기 위해 밤새 안녕을 해야 할 텐데” “호이 엄마 가셨다. 자주 전화해라”
엄마에게 호출이 왔다. 어찌 된 일인지 방송도 한 개 밖에 안 나오고, 냉장고에서 물이 질질 샌다고 한다. 리모컨을 잘 못 건드려 기억선국이 뒤죽박죽된 것이다. 이것저것 눌러보라고 원격조정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더욱더 엉켜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냉장고 코드를 빼고 문을 열고 건조를 시킬 것을 주문했지만 그 안에 있는 김치 통이 큰 것이 있는데 옮길 수가 없다고 하면서 짜증을 낸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하여 수리를 부탁할까 하다가 이참에 엄마의 얼굴도 볼 겸 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주말 아침 일은 시간임에도 고속도로를 접근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빗줄기는 계속하여 차창을 부딪쳐 산산이 부서져 나가 떨어졌다. 홀로 가는 여행치고는 참으로 운치가 만점이었다. 구름이 드리워졌다가 걷히면서 녹색의 물결이 펼쳐지고 다시 폭우가 쏟아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라디오에서는 세상사는 이야기와 함께 잔잔한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수도권을 벗어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살이 내리 쬐고 있었다. 비온 뒤라 그런지 온 세상이 맑고 투명했다. 야호!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아 속도를 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달구지는 하늘로 날아 갈 듯 쏜살 같이 달려갔다.
읍내에 도착하여 전화를 했더니만 받지를 않는다. 무엇을 사갈까 망설이다가 노인들이 먹기 편안 바나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찌개용 돼지고기도 한 근 사고 소주도 한 병 샀다. 라면도 샀다. 혼자 사는 살림 너무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차라리 현금을 더 주고 오는 것이 엄마에게는 유리하다. 시골길 역시 잘 닦여져 있어 흙을 볼 수가 없었다. 비가 와서 질척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골목어귀까지 포장되어 있어 도시의 길과 별 다름이 없었다. 대문 앞에 달구지를 멈추자마자 인기척을 느낀 엄마는 달려 나오면서 일찍 출발했구나 하시면서 나를 반겼다. 머리는 백발이고 검게 탄 얼굴은 골이 깊이 패여 힘든 여정을 고스란히 나타냈다. 반가운 나머지 달려가 손을 잡아 주었다. “더운데 고생이 많지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시골집은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를 감싸주었다.
제일먼저 리모컨을 조작하여 공중파 KBS1, KBS2, MBC방송을 나오게 했다. 유선을 달아 준다고 했지만 다달이 내는 사용료가 부담이 간다고 한다. 사용료에 대하여 걱정 말고 보라 했지만 낭비라고 하시면서 극구 말린다. 냉장고는 콘센트를 뽑은 다음 안에 있는 음식을 꺼내 자그마한 냉장고로 옮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냉장고의 하부에서는 계속하여 물이 흘러내렸다. 장시간 사용하다보니 얼음이 얼어붙어 배수가 잘 안된 것이었다. 내손으로 고치고 나니 시골에 가면서 소비한 기름 값이 고스란히 떨어졌다.
부엌에 있는 수도 상단의 노출된 부분을 감싸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되었다. 돼지고기 찌개와 소주를 곁들여 먹은 점심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시골 고추장과 마당에서 뜯어온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찌개는 환상이었다. 일순간에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엄마는 이가 없어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아직도 오물오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았는데 지금은 이가 없어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좋을 때 잘 먹으라고 하시면서 냄비에 있는 고기를 모두 나에게 주었다. 틀니를 지탱하는 잇몸이 점점 줄어들어 씹을 때마다 통증이 온다고 한다. 연세가 있어 임플란트 역시 시술하는데 어렵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먹는 즐거움을 찾아드려야 하는데 방도가 없다.
날이 세자마자 차가 밀릴 것을 대비하여 바로 출발했다. 고향을 뒤로 하고 상경하는 길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향을 갈 때마다 야위어가는 엄마의 모습과 사소한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둘씩 세상을 등진 어르신들의 소식을 전해주면서 “자식들 고생을 안 시키기 위해 밤새 안녕해야 할 텐데” 하는 엄마의 말이 오는 내내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그 마음을 달래 주듯 수도권에 다다르면서 소낙비가 마구 쏟아졌다. 자동으로 맞추어 놓은 윈도 브러시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맹렬하게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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