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으로...좌절과 절망은 없다.
◇ 가자 16강으로...좌절과 절망은 없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쭈~욱 들이켰다. 오장육부가 부르르 떨렸다. 찌릿찌릿 퍼져나가는 전율은 발끝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안주는 식탁위에 있는 김으로 해결 했다. 막걸리안주가 너무 푸짐하면 막걸리의 진한 향을 느낄 수가 없다. 풋고추 하나, 멸치 두 마리, 김 한 장이면 막걸리 한통을 먹는데 충분하다. 일순간에 한통을 비우고 나니 더위가 싹 가시었다. 약간 취기가 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해서 축구 볼 준비가 끝났다.
아내가 막 들어 왔다. 축구를 보기 위해서 곧바로 달려왔다고 한다. 텔레비전에 전원을 넣었다. 축구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거리에는 붉은 물결이 넘쳐 났다. 육십 대가 넘은 할머님들도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응원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축구가 무엇이기에 전 국민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발끝에서 떠나는 공의 향방에 따라 터져 나오는 탄식과 함성이 교차하면서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매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무서운 응집력은 대형 스크린 앞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면서 축구는 시작되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해댔다. 긴장감이 몰려오는 불안한 상태에서 전․후반 끝까지 다볼 수가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 나에게 득과 실이 없는데 왜 자꾸 숨이 가빠오는 지 모르겠다. 손에 땀이 났다. 혈액이 목 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 왔다. 눈동자는 화면을 주시한 채 공을 따라 바삐 움직였다. 공은 하프라인을 넘지 못하고 우리진영에서 맴돌았다.
밤 열시가 넘어서 귀가하는 딸내미가 자율학습이 취소되었다면서 가방을 내 던지며 들어 왔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딸내미가 합세 하면서 간만에 가족이 다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되었다. 축구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무리하게 수비를 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프리킥을 주고 말았다. 불안했다. 잘 버텨내야 할 것인데, 살가죽에 소름이 확 돋아 올랐다. 골에어리어 근처에는 자리다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킥하는 순간 공은 날아가는 방향을 틀어 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어찌된 일인가. 아직 초장인데, 어이가 없었다. 아들과 딸내미는 탄식을 자아냈다.
한골을 더 먹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전반전 45분이 다 지나갔다. 후반전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 것인가.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 상대방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가로챈 골은 골문을 향하여 날아가 골키퍼를 살짝 비켜 골 망을 흔들어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아들과 끌어안고 펄펄 뛰었다. 옆에 있던 아내도 딸의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 아들과 그렇게 꼭 껴안고 뛰어 보기는 처음이다. 축구는 우리가족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위대한 힘을 발휘 한 것이다.
대량 실점을 하고 경기가 끝났다. 도수 높은 독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선 조금 더 분발을 해야 할 것 같다. 점수 차를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하여 반드시 16강에 안착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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