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에 맺힌 우정
◇ 빗방울에 맺힌 우정
유월장마라 했는데 비는 하루 종일 줄기차게 내렸다. 어둠이 세상을 삼키면서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가랑비 사이로 비추어지는 조명은 날카로웠다. 살짝 분 바람에 조명은 흔들렸다. 빗물에 반사되어 뻗어나간 빛은 움직이는 물체에 산란되어 흩어졌다.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했다. 빗줄기와 빛이 만들어낸 노원의 야경은 환상이었다.
중원에서 놀던 호랑이들이 변방인 노원에서 잔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음습하는 가운데 하나 둘씩 노원역을 빠져 나왔다. 반짝이는 눈알을 굴려 보지만 중원이나 변방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노원역 주변의 상업지역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유흥주점을 비롯하여 모텔, 노래방, 나이트, 횟집이 늘어서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면 오히려 종로의 거리보다 더 화려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바다잔치’ 이층에 칸막이로 가려 있는 방안에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탁자에는 안주가 쏟아져 들어 왔다. 속을 들어 낸 멍게를 비롯하여 잘 구어 진 삼치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는 미각을 자극했다. 이윽고 칼질에 베어진 생선살이 식탁에 놓여졌다. 무채에 올려 진 생선회는 무수히 많은 젓가락세례를 받았다. 안주가 빗발치는 가운데 채움을 비운 술병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무수한 말이 오가면서 충돌한 말과 말들은 방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거리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 옆에 자리 잡은 ‘카우보이’ 호프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긴 탁자에 늘어선 친구들은 용맹이 넘쳐흘렀다. 차가운 맥주가 흘러들어간 배속에서는 싸늘함에 놀라 방광을 자극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친구들은 더욱더 상기되어 어여뻤다. 아주 엷은 갈색 액체가 더해질 때마다 처음의 시원함은 사라지고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호방의 유행어인 “인생 뭐있어. 알코올이지.”란 말이 연신 터져 나왔다.
노래방은 운동장이었다. 조명은 흐릿했지만 내부는 휘황찬란했다. 흥을 돋우는 데는 노래가 최고다. 성인음료는 노래방에서 빠질 수 없는 영원한 윤활유다. 담배는 필요악이다. 노래와 성인음료가 더해지면서 친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손과 손이 닿은 끝에는 번개가 요동치고 있었다. 방안의 산소는 고갈되어가는 중이다. 최악의 상태로 진동하고 있는 공기는 호흡을 가쁘게 했다. 정신이 몽롱하면서 흔들리는 물체는 가물거렸다. 작은 공간에서 최면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변방이라고만 여겨 왔던 노원의 밤은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외출로 완성되어 갔다.
만남의 즐거움이 즐거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헤일 수 없는 술잔에서 묻어나오는 우정이야말로 사랑보다 더 진하다. 수많은 대화 속에 터져 나오는 유익한 정보들은 삶의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늘진 얼굴에 아침햇살이 퍼지게 하는 데 특효약이 있는가. 만남의 자리에서 크게 한번 웃으면 만사형통이다. 안보면 보고 싶고 보면 또 보고 싶은 것이 애인만이 아니다. 우정으로 맺어진 인연이야말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영원한 만남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