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영등포의 밤
아!~아! 잊으랴! 어찌 잊으랴! 황홀했던 영등포의 밤을...
영등포에 가는 길은 무척이나 더웠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는 시원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하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일뿐이다. 내 마음은 이미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눈동자를 통과한 빛은 망막에 도달하기 전에 아름다운 그림만이 맺힐 수 있도록 조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나와 영등포의 길을 걸었다. 지하상가 통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요즈음 애들은 웃자라서 그런지 그 안에 있는 나는 하나의 점이었다. 떠밀리다시피 하여 지상으로 나왔다. 뜨거운 기운이 확 밀려 왔다. 하늘과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아 야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영등포의 거리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웨딩홀 뷔페를 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 섰다. 기다길 틈도 없이 문이 열렸다. 엉겁결에 밀려들어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승강기는 3층을 지나 4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8층까지 올라갔다. 내가 긴장한 것인가. 승강기 안에는 한증막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시원한 바람은 피부를 긴장시켰다. 일순간에 피부에 묻어 있는 수분을 빼앗아 갔다. 상쾌했다.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 해주는 운영진과 친구들의 따스한 손길에 먹먹했던 기분이 빠르게 현장분위기로 동화되었다. 실내조명과 친구들의 화사한 옷차림에 잠시 눈을 깜박여야 했다. 자리를 잡아 냉수 한잔을 마시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소주잔에 취기는 금방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흥을 돋우는데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몇몇 친구들의 재롱에 분위기는 후군 달아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내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곳저곳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실내에 퍼져나갔다. 홀 안에는 술 향기와 호랑이들이 내뿜는 열기로 모두다 최면에 빠져 들어갔다.
유혹의 전단지가 난무하는 영등포의 밤거리를 호랑이들이 무리를 지어 걸었다. 중년을 훌쩍 넘은 호랑이들의 거름걸이는 휘청거렸다. 우유를 먹고 자란 애들은 들이받을 줄만 알지 음주가무에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들이 이제와 빛을 보는 것이다. 프로는 아니지만 모여 마시고 노는 데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 마시고 노는 것처럼 열정이 넘친다면 배 고품의 서러움은 우리 곁에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환락가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감자탕 사장님들은 공교롭게 할머니들뿐이었다. 얼굴에 파인 골자기 마다 죽음의 꽃이 보였지만 말하는 재주는 영등포의 밤을 춤추게 했다. 살점을 뚝 떼어 입에 넣고 술 한 잔 부으니 그 또한 별미였다. 몽롱한 가운데 보이는 풍광은 예술이었다. 흐느적거리며 붙어 있는 쌍쌍들, 주체 할 수 없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구부리고 있는 사모님, 모퉁이에서 누가 보든 말든 쪽쪽 빨아대는 키스족들, 영등포의 밤은 행위 예술의 총 집합체였다.
어둠속에서 보낸 시간은 일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처럼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 함께 한 시간들, 술과 이야기 속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한 정, 억만금을 주어도 살수 없는 것이다. 그날 밤, 술에 만취되어 얼굴에 금이 갔지만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행복의 길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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