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지리산 종주

말까시 2009. 2. 16. 15:00

 

  

                         《지리산 종주(2009. 2. 6~2.8)》

 

1. 술로 시작한 첫날


난 벌써 취해 있었다. 인생사 살아가면서 원치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그런 모임에 빠질 수가 없었다. 지리산 종주라는 큰 행사를 앞두고 참석하는 그 자체가 부담이 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모이면 의례적으로 술이 오가기 마련이다. 권하는 술을 나름대로 거부하기는 했지만 두어 시간 동안 마신 알코올의 양이 취기가 오를 정도로 상당했다. 술좌석이 일차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떻게 나갈까 호시탐탐 노리기를 반복한 끝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소리 없이 빠져 나왔다. 지하주차장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용산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퇴근하는 사람 중에는 나처럼 거하게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동자에는 알코올이 점령하여 초점이 흐렸다. 보는 사람 족족 아름다웠다. 중간 중간에 메시지가 왔지만 지하철 소음으로 난 몰랐다. 신호등 없이 달려가는 지하철은 금방 나를 용산역에 내려다 놓았다.


몇 년 만에 가보는 용산역인가. 지하철에 나와 보니 방향 감각이 없었다. 옛날의 용산역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는 출구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호남선 무궁화호를 탈수 있는 대합실에 도착 했다. 마침 전화가 왔다. 잠시 후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지리산 종주를 위하여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차안에는 온화하면서 부드러웠다. 여행객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삼원색이 불빛과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소란스러웠던 분위기는 이내 고요함으로 변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승객들은 잠을 청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빨리 자야 내일 산행이 수월하다는 것을 알지만 잠을 청하는 친구는 없었다. 대화가 잠시 멈춰지는 순간 차안은 적막감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했다.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화려했다. 몇몇 여행객들이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차 한량 전체가 카페였다. 공간에 비하여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깊은 밤으로 접어들수록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캔맥주에 소주를 희석하여 소맥을 만들어 먹었다. 초저녁에 먹은 술기운도 아직 달아나지 않았는데 소맥을 한잔 들이키고 나니 다시 취기가 감돌았다. 한잔 술에 대화는 무르익어 내일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대화는 계속되었다.


시간은 하루가 가고 새날이 시작 된지 한참이 되었다.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와 돌아와 잠을 청했다. 열차의 좌석이 잠을 청하기는 좁았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보았지만 좀처럼 깊은 잠에 빠져 들지 못했다. 자리에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빈자리가 많았다. 넓은 자리로 옮겨 눈을 감았다. 새벽열차는 어둠속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간간이 하얀 불빛만이 보일뿐이었다. 인간은 상념의 동물이라고 홀로 앉아 길게 다리를 뻗어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보니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순간 잠이 들었다. 잠시 후 구례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벌떡 일어나 하차를 했다.

 

2. 노고단의 아침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찬바람이 확 몰아쳤다. 차안의 따뜻한 공기에 익숙했던 육신은 반으로 줄어 버렸다. 아직 버스가 다니기에는 너무나 일은 시간이었다. 대중교통은 택시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들은 손님을 서로 모시려고 바짝 다가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 먼동이 트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어찌한단 말인가.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 일부 승객은 대합실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우린 그럴 순 없었다. 상당한 시간을 절충한 끝에 택시를 탈수가 있었다.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시골길을 택시는 무섭게 달렸다. 잠깐사이에 택시는 성삼재에 도착했다.  


어두컴컴해서 건물인지 산인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길은 포장되어있었다. 그 위로 눈이 내려 다져있었다. 미끄러웠다. 아이젠을 착용 할 정도는 아니었다. 헤드랜턴의 빛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노고단을 향하여 걸었다.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숨이 막혔다. 술이 화근이었다. 새벽 찬바람에 땀은 흘리지 않았지만 벌써 근육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잔뜩 긴장해서 인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포장한 도로이지만 경사도가 상당했다. 산은 산이었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진짜 산길이 나타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노고단 정상에 오르니 날이 밝아오는지 나무들의 윤곽이 조금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노고단산장의 불빛이 보였다. 반가웠다. 저기 저곳을 가면 잠시 쉴 수 있고 밥을 해 먹을 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힘이 솟았다. 발걸음이 경쾌했다. 노고단의 야경을 감상 하고나서 우린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사장 안에는 일은 새벽임에도 식사를 하는 사람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얼큰한 라면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허기진 배에서는 꼬르륵 신호음이 울렸다. 음식도 가지가지 다양했다. 라면은 기본이이고 하얀 쌀밥에 고기반찬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음식들은 진수성찬이었다. 소주를 곁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술 향기에 잠시 넋이 나갔다. 내려오면서 먹은 술로 인하여 속은 쓰리고 아팠다. 뜨거운 국물에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우리도 배낭에서 쌀을 꺼내 밥을 했다.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기로 했었는데 그보다 청국장을 끓여먹자는 의견에 이의가 없었다.


옆자리에서는 생일파티를 하는지 케익을 중심으로 모여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케익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한참을 쳐다보았더니 한 덩어리 주었다. 아직 청국장은 끓지 않았다. 케익을 손으로 뜯어 입에 넣었다. 사르르 녹았다. 산에 오르면 인간의 마음이 순수해진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여기저기 가져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모습은 보기가 좋았다. 산사람들의 인심은 참 좋았다.   


이윽고 청국장이 끓어 넘치면서 구수한 향기를 내뿜었다. 코펠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맹렬했다. 조금만 더 끓으면 먹을 수 있다. 김치를 꺼냈다. 홍어무침도 꺼냈다. 멸치볶음도, 고산지대라 밥은 설었지만 청국장에 말아 먹으니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팩소주를 들고 건배를 외쳤다. 우렁찼다. 이렇게 해서 산행 첫날 노고단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3. 죽음의 계곡(반야봉)


노고단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나와 보니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전날 음주로 인하여 다들 피곤해 했다. 한 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면 술독이 빠질 것 같았다. 취사장을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군대 막사와 흡사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침상은 썰렁했다. 우리 일행 밖에 없었다. 모포도 없었다. 옷을 입은 채로 누웠다. 눕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머리를 댔나싶었는데 누군가 깨웠다.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한다.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산행시간을 지체 하다보면 그만큼 늦어져 잘못하다간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8부 능선을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한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술독은 풀리지 않았다. 하늘이 노랗고 다리에는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은 무리였다. 여기서 다시 돌아간단 말인가. 돌아가는 길도 멀고 앞으로 가는 길도 멀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발 1,400m이상의 능선을 계속하여 오르고 내려가는 반복되는 산행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햇빛이 들지 않은 계곡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절벽으로 추락하여 바로 죽음이다. 오르는 길보다 내리막에는 반들반들 얼어붙은 눈은 얼음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이젠을 착용하여 가는 길도 쉬운 길이 아닌데도 아직 난 착용하지 않았다. 소시적 미끄럼을 타던 실력을 발휘하여 앞발을 내밀고 뒷발로 조정하여 눈길의 스릴을 즐겼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임걸령, 노루목을 거쳐 반야봉 아래에 도착했다. 반야봉 등정은 예정에 없었다.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서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오르는 길은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 나섰다. 사기였다. 여기서 난 초죽음이었다. 이미 에너지는 다 고갈된 상태인데 수락산 정상을 갔다 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도 없다. 방법이 없었다. 먼지가 묻어 있는 눈을 걷어내고 나니 솜사탕이었다. 한주먹 눈 뭉치를 쥐어 입에 넣었다. 타들어가는 목에 눈이 녹아 내려가자 살 것 같았다. 바싹 마른 입술에 수분이 공급되고 나니 루즈를 바른 것처럼 부드러웠다. 가다 쉬고를 반복 한 끝에 반야봉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팔방 펼쳐진 풍경은 산과 산이었다. 야호! 하고 외치진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정상의 정복이란 쾌감은 야호를 수십 번 외치고 있었다.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오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눈덩이는 우리들의 앞길에 장애물이었다. 급경사를 이루는 곳곳에 튀어나온 돌들은 발목을 곧바로 지탱하는데 어려움을 던져 주었다. 넘어질 듯 위태로운 발걸음을 거듭한 끝에 반야봉을 내려 올 수가 있었다. 무사히 하산을 하여 삼도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가졌다. 


4. 벽소령의 밤


삼도봉을 출발하여 다시 산행은 계속되었다. 평소 체력 단련이 잘된 친구들은 앞서 갔고 술독에 빠진 친구들은 거북이걸음으로 천천히 갔다. 우여곡절 끝에 첫날 점심은 3시가 넘어서 먹을 수가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연화천 대피소에서에 도착해보니 다른곳과는 달리 샘물이 솟았다.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너무나 시원했다. 점심과 함께 소주한잔 들이키고 나니 힘이 다시 솟기 시작했다. 산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에너지 충전을 하고나니 이제 날아갈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볍게 눈밭을 걸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산과 산으로 연결된 지리산 오지에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시골길을 걷듯 가끔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언젠가 한번 본 듯 다정했다. 그것이 산사람들의 정인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짧은 인연일 뿐인데 한마디 인사에 지친 몸에 원기가 되 살아 났다.


연하천 산장에서 벽소령 산장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가 뉘엿 넘어갈 즈음에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다. 아름다웠다. 산장의 주변은 넓지 않았다. 산을 깎아 만든 이층 목조건물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이국적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극심한 겨울 가뭄으로 샘물이 말랐다는 것이다. 연하천 산장에서 먹을 물을 준비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생쌀을 먹을 뻔했다.


벽소령 산장 역시 내부는 이층구조로 아래층은 남자 위층은 여자가 잠을 잘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했다. 산장안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거실에는 조용히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제법 많은 책들이 꽂아 있었다. 잠시 앉아 독서를 하고 싶었지만 저녁을 해 먹는 것이 더 급했다. 하루저녁 묵을 호실을 배정받아 여장을 풀고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자 취사장으로 갔다.


취사장은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조용했다. 서로 맡은바 일에 열중하느라 시선은 고정되어있었다. 우리도 쌀과 김치 고기를 꺼내어 적당히 불을 질러 밥과 반찬을 만들어 냈다. 점점 어둠이 깔리고 나면서부터 취사장안은 소란스러워 졌다. 술과 음식이 오고가기를 거듭하더니만 이제 취사장안에는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어여뻐질 때 취사장을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잠자리가 낯설다 보니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조금 눈을 붙였나 싶어 시간을 보니 시간은 제자리에서 있었다. 하루의 산행이 피곤했는지 아래층 남자뿐만 아니라 이층 여성분들도 코를 골았다. 짜증은 나겠지만 생리적인 현상을 어찌한단 말인가. 몸을 뒤척이다 난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별이 빛났다. 도시의 하늘에서 볼 수 없었던 저 하늘의 별이 다 내 것이라면 하나씩 보석으로 만들어 내다 팔면 떼 부자가 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밤공기는 찼다. 코도 시리고 허벅지에 스며드는 찬바람에 도저히 있을 수 없어 다시 침실로 들어왔다. 역시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로 방안은 시끄러웠다. 비몽사몽 하다 보니 날이 샜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5. 인간군락 장터목산장


지리산이 제아무리 크다고 하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나니 나의 발아래 있었다. 굴곡의 길을 가는 방법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나무향기 듬뿍 배인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나니 헐떡거리던 숨소리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젠 산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힘에 겨워 인상을 찌푸리고 앞만 보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지 주변경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끝없이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머릿속에 담아 감상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벽소령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우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봉우리와 봉우리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당연히 경사도도 급하지 않았다. 간간이 난코스도 나왔지만 시골 언덕 구릉지처럼 산책하기 좋은 길이 계속하여 펼쳐졌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등산로 양옆에는 계속하여 산죽이 자생하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나뭇잎을 다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날리어 흔들 거렸지만 산죽만큼은 녹색의 빛깔을 잃지 않았다. 작은 바람에도 사각사각 소리에 삭막하기만한 겨울 산에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 했다.


덕평봉, 영산봉을 지나 세석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촛대봉 연하봉을 거쳐 가는 도중 한 여자가 한눈을 팔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번했다. 앞에 있는 아주 미남형의 산사람이 떡 하고 서있었던 것이다. 구리 빛 얼굴에 긴 머리를 뒤로 묶어 흩날리는 머리는 산사람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내가 보아도 멋졌다.


해질 무렵 긴 산행 끝에 천왕봉 아래 최종베이스 켐프인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본 산장 중에서 가장 웅장했다. 지리산을 찾는 모든 사람의 최종 목적지가 천왕봉이라 그런지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산장은 주변경관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 듯 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식수가 다 말라 버렸다는 것이다. 우린 이미 정보를 알고 많은 양의 물을 확보하여 별 어려움은 없었다.


이곳 산장은 인터넷 예약이 순간적으로 끝나는 바람에 무작정 온 것이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혹시 침실을 배정 받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입실 마감시간이 끝나갈 무렵 방송이 흘러 나왔다. 예약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50이 넘은 사람들부터 침실을 배정한다고 하였다. 다 사십대가 아닌가. 배정을 받지 못하면 건물 구석에서 쪼그리고 하루 밤을 보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우리일행은 모두 침실을 배정 받을 수가 있었다.


취사장은 잔치분위기였다. 지리산 산사람들의 최종목적지 바로 아래 산장이다 보니 형형색색 등산복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건배를 외치고 한잔의 즐거움에 난리 법석였다. 우린 술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술 인심이 너무 좋았다. 여기저기서 받아 모아보니 우리가 먹고 남을 만큼의 많은 양이었다. 40도가 넘은 고량주를 비롯하여 산사춘, 안동소주 다양한 술을 맛볼 수가 있었다. 가장 멋진 만찬이었다.


빨리 자고 싶다. 침실 안은 인간시장이었다. 아니 인간군락이었다. 아무렇게 누워버린 산사람들은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다 풀기라도 하려는 듯 맹렬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좀 있으니 쌍발기가 날아올랐다. 헬기의 둔탁한 엔진 음이 방안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저녁에 술과 함께 먹은 단백질이 맹렬하게 소화가 되는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방귀를 뿡뿡 껴댔다. 방안은 이층으로 된 침상마다 촘촘히 누워있는 인간들의 열기와 방귀냄새로 숨쉴 수가 없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잠을 청하지 못하고 씨부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있었다.


검은 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저히 잠을 청 할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내일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의아한 나머지 하늘을 보았다. 별이 보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은 나를 향해 반짝였다. 기뻤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해돋이를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어려운 해돋이를 처음 산행으로 볼 수가 있다니 가슴이 벅찼다. 거의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날이 샜다.


6. 천왕봉의 일출                      

 

날이 샜다. 빨리 아침을 먹고 천왕봉을 올라야 한다. 우린 어두운 방안의 작은 불빛을 이용하여 짐을 쌌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천왕봉까지의 길은 거의 급경사였다. 그리고 눈이 얼어붙어 빙판이었다. 지금까지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급경사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반병신 아니면 죽음뿐이다. 완전무장하고 어두운 밤길을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천왕봉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에 라면을 먹었지만 저녁에 과음을 한 탓에 급경사를 오르는 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잘 보이지도 않는 등산로는 여기저기 큰 돌이 돌출되어 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밤길이라 미끄러웠다.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겁이 났다. 정상의 코앞에서 잘못되면 큰일이 아닌가. 어떻게 오른 산인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 온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겼다.


오인의 전사들은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 아직 해는 저 멀리 동해바다 아래에 있는 듯 수평선의 끝만 약간의 붉은 빛이 났다. 벌써 정상에는 산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바람이 들어갈세라 고무줄도 당겼다. 그래도 해발 1,915m천왕봉 정상은 체감온도가 대단했다. 코를 애일 듯 부는 바람도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참을 만 했다.


점점 인파는 불어났다. 다들 기념사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태양은 아직 수평선 아래에 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손이 곱았다. 그래도 즐거웠다. 작은 떨림으로 전해지는 카메라 셔터소리는 정확하게 귀전에 닿았다. 싫지 않은 소리였다. 점점 셔터소리는 커졌다. 수백 명이 누르는 셔터소리는 차디찬 새벽공기를 떨리게 했다.


드디어 수평선 끝에 붉은 점하나가 올라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감동이 무엇인지 몰랐다. 세상은 나를 미워하는지 요즈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시 딛고 일어서자. 다짐을 했다. 피가 끓어오르듯 심장의 박동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옷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가슴은 벌렁 이고 있었다. 나는 빌었다. 앞길에 좋은 일만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거듭하여 빌고 또 빌었다.


점점 커지기 시작한 태양은 붉은 빛에서 하얀색으로 변해갔다. 드디어 세상이 밝아졌다. 새로운 아침이 온 것이다. 새해 새아침의 해돋이는 아니지만 내 생에 있어서 가장 큰 감동을 먹었다. 해는 솟아올라 완벽한 원을 만들어 냈다. 천왕봉에 솟아오른 태양이야 말로 내가 다시 보기 어려운 귀한존재이다. 고맙다 태양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역시 만만치 않았다. 3시간가량 돌산을 내려온 끝에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했다. 2박3일 동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직선거리 25km, 실제거리 약 52km의 지리산 종주라는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우린 다함께 손을 맞잡고 “해냈노라” “성공했노라”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