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고향의 멋과 엄마의 맛

말까시 2008. 12. 15. 15:05

 

   

◇고향의 멋과 엄마의 맛


서울을 벗어날 때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 해살이 내리쬐기도 했지만 지하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냉기를 머금지 않았다. 오히려 차안의 공기는 더워서 히터를 끄고 창문을 열어야만했다. 아마도 시골의 공기와 도시의 공기와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것 같다.


차안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함은 차가움으로 변했다. 사우나 냉탕에서 냉수를 머리에 쏟아 부은 것처럼 정수리가 얼얼했다. 고향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머릿속 깊숙이 들어와 속세에 찌든 쓰레기를 말끔하게 쓸어냈다. 파란 하늘만큼이나 머리 속은 아주 맑았다.


차린 밥상은 초라했지만 맛은 최고였다. 자연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버무리고 익혀 아주 맛깔스런 반찬으로 만들었다. 정성스런 손맛이 곁들여진 고추절임, 김치찌개, 고들빼기 등으로 차려진 저녁상은 조미료에 범벅이 된 도시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염되지 않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들은 반찬이 아니라 보약이었다.


애들은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다. 산골이다 보니 전파가 약해 그림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유선을 달아 드린다고 해도 극구 사양을 한다. 볼 것도 없는데 다달이 내는 시청료가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살아온 삶이 워낙 검소함이 배어 있어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길들여진 탓인지 바닥이 배기고 허리가 아파 선잠을 자야 했다. 아랫목을 내어주고 위목에서 주무시는 어머니께서는 수시로 이불을 살피곤 했다. 잠버릇이 험한 아들놈이 발로 차면 또 덮어주시고는 방이 춥지 하면서 연탄아궁이를 보러 나가시기를 반복했다.


날이 셋나 싶어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두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시골의 긴 밤을 어찌 보내야 할지. 불편한 잠자리는 계속하여 몸을 뒤척이게 만들었다. 비몽사몽 칼잠을 자다 보니 차가움이 느껴졌다. 공기구멍을 너무 열어 연탄불이 꺼진 것이다. 우리가족은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꼭 껴안고 잠을 잤다. 간만에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어머니는 자다 말고 큰 죄라도 지은 듯 “이일을 어쩌나 모처럼 시골에 와 고생을 해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는 나가셨다. 연탄보일러에 번개탄을 넣고 불을 다시 지폈다. 새벽이 되어서야 방바닥은 뜨거워졌다. 늦게나마 깊은 잠에 빠져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아침식사를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고 모든 것이 낯설어 세면도 하지 않고 출발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고요한 시골길을 저속으로 운전했다. 자연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병풍을 보면서 산과 들을 샅샅이 뒤졌다. 오는 길 금산군 복수면 ‘복수한우마을’에서 암소만 취급하는 ‘평양할머니’ 식당에 들렀다. 450g에 18,000원 하는 모듬소와 22,000원하는 왕갈비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족 네 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푸짐했다. 직접 산지에서 도살한 한우는 붉은색이 선명했다. 숯불에 살짝 구워 입에 넣고 씹으니 고소한 육즙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부드러운 살코기는 씹을 겨를도 없이 사르르 녹았다.


간만에 한우를 양껏 먹어 흡족했는지 애들은 시골에 온 보람이 있다고 했다. 어제 저녁 불편했던 잠자리는 하나의 추억거리였다면서 멋 옛날이야기처럼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오는 길 내내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항상 갈 때 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하는 고향 산천은 마술과도 같은 신기한 곳이다. 또 다시 가고 싶은 고향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