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울고 있었다.
◇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작은 발걸음일지라도 힘에 부치고 무엇 하나 하려해도 남의 손을 빌어야 할 수 있으니 지나간 세월에 대한 원망도 아니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아니요 그냥 세상이 아픈 것이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었지만 이제는 이가 없어서 못 먹는단다. 갖은 시집살이 다 이겨내고 살아온 삶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고 나니 자식들 다 객지로 내보내고 홀로된 삶이 슬픈 것이다. 가족들과의 만남에 웃고 있는 듯 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것이다. 육신이 늙고 늙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온다. 어딘가를 가고자 하면 즐거워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걸랑 엄마는 섣불리 나서는 것을 망설인다. 젊었을 때에 전국을 누비며 보따리 장사로 삶의 터전을 일구었고, 학업 하는데 모자람이 없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준 억척엄마였다. 그렇게 기계가 높았던 엄마의 모습은 인형처럼 작아졌다. 하지만 마음하나는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꽉차있었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해도 엄마의 넓은 마음은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언제나 한결같이 곱고 고운 그 마음은 고향의 하늘처럼 더욱더 맑아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추석명절 풍습도 많이 변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역귀성이다. 귀성길 고생하는 자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내 몸 하나 움직이면 길바닥에서 저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을 텐데, 자식을 향한 마음하나는 구겨짐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언제부터인가 버스터미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보따리는 양손에 들고 하물며 머리에 이고도 또 하나의 보따리가 있다. 택배로 붙이면 수월할 것인데, 모르는 당신들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것이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한손에는 작은 가방하나하고 다른 손에는 보따리가 쥐어져 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버스 화물칸으로 달려간 엄마는 엄청난 보따리를 찾아냈다. 힘을 보태어 끄집어내어 보니 상당히 무거웠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시골에서부터 어떻게 들고 왔을까.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운반할 수 없는 것이다. 내용물이 상처날까봐 조심해서 들고 가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 안가는 농산물이지만 손수 땅을 일구 만들어 낸 것이라 아주 소중히 여기는 듯 했다. 자식 며느리 손자를 보고 즐거워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이삼일 푹 쉬고 가라 했더니만 추석날 제사지내고 바로 내려간단다. 날씨 좋을 때 깨도 털고 고추도 말리고 해야 할일이 많다고 했다. 막무가내로 간다고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표도 예매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터미널로 가보자고 했다. 서울의 길거리에는 차들로 꽉차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도착하는 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고향 가는 버스를 탈수가 있다고 한다. 엄마는 기다린단다. 편하게 택시타고 가라했는데 아마도 버스를 타고 갔을 것이다. 읍내에서 시골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세 번 정도 다닌다. 버스를 노치면 택시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버스비의 여섯 배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시골 엄마들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택시비를 아끼기 위하여 무작정 기다린다. 그러지 말라 해도 살아온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가보다. 옛말에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하루저녁 자고 내려 가셨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하고 갔다. 우린 언제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앞서 갈 수가 있을까. |